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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연표3(해방후~2002년)1편
독도 이상훈  (Homepage) 2020-03-24 21:44:08, 조회 : 226, 추천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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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본부 펌

                                                                                                    https://cafe.naver.com/docdoinkorea/6130 

독도연표3(해방후~2002년)

독도연표3(해방후~2002년)

1945년
*8월 15일
. 포츠담 선언을 거부했던 일본은 원폭투하와 소련의 참전 등으로 결국 이날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
*9월 2일. 연합국과 일본 대표는 동경만 미국 전함 미주리(Missouri)호 선상에서 항복 문서에 공식 서명함. 태평양지구 미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일본의 어로활동을 일본 혼슈[本州]·홋카이도[北海道] 주변의 일정 해역에 한정하는 조치(MacArthur Line)를 선포함. 이 때 독도는 물론 제외되었음.
*9월 6일. 항복 이후 미국대통령이 SCAP(연합군 최고 사령관, 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에 전달한 '미국의 초기정책 지침(United States Initial Post-Surrender Policy for Japan)'에서는 일본 "주권(Japanese Sovereignty)"의 지리적 범위를 다음과 같이 한정함. "혼슈[本州]·홋카이도[北海道]·규슈[九州]· 및 시코쿠[四國]와 주변 제 소도(小島)"
*9월 7일. 태평양 미군 사령부, 한반도 38°선 이남 점령을 선포함(사령부 포고 1호).
*9월 27일. 일본의 어로(漁撈)활동 제한 조치(MacArthur Line)의 범위를 확장함(독도는 물론 제외됨).
*11월 3일. 미국 대통령이 SCAP에게 보낸 '일본의 점령과 관리를 위한 초기 지침(Basic Initial Post-Surrender Directive to the SCAP for the Occupation and Control of Japan)'에서 점령군 사령관이 행사할 권한의 적용에 있어 [일본 영역범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함. "일본의 4개 본도(本島) 즉 홋카이도[北海道]·혼슈[本州]·규슈[九州] 및 시코쿠[四國]와 대마도(對馬島)를 포함한 1000여 개의 인접한 제 소도(小島)"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사령부에서 내린 지령 677호 '약간의 주변지역을 정치상 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하는데 대한 각서'를 발표하면서 Liancourt Rocks를 일본영토에서 제외함을 3조에서 규정.
위의 규정에 대해 일본은 6조에 "최종적 결정에 관한 연합국의 정책을 표시한 것은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어 이것이 일본영토를 규정한 것은 아님을 주장.
우리나라는 이후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한다는 적극적인 규정이 없으므로 독도가 명확히 일본영토에서 제외되었음을 근거로 일본측의 주장에 반박.

1946년
*1월 29일
연합국최고사령부(SCAP)이 일본 제국정부에게 보낸 '약간의 주변 지역을 정치상 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하는 각서(Governmental and Administrative Separation of Certain Outlying Areas from Japan)' 즉 '연합군 최고 사령부 훈령 제677호(SCAPIN No.677)'에서는 일본의 종래 식민통치 영역에 대한 주권적 관할을 다음과 같이 분리함. "일본의 영역은 일본의 4개 본도(本島) 즉 홋카이도[北海道]·혼슈[本州]·규슈[九州] 및 시코쿠[四國]와 대마도(對馬島)를 포함한 1000여 개의 인접한 제 소도(小島)로 제한하고", "울릉도·독도·거문도 및 제주도를 일본의 영역 범위에서 제외함"(3항)· "한국에 대한 일본 제국정부의 정치적 행정적 관할을 배제함."(4항)
(연합국최고사령부는 위 근거에 의해 독도를 주한 미군정에 이관하였고 미군정은 이를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정부로 반환함. 그러나 일본은 지령 677호는 행정권의 정지였을 뿐 영토의 처분은 아니라고 해석.) 
*6월 22일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일본 제국정부에게 보낸 '연합군 최고 사령부 훈령 제1033호(SCAPIN No.1033)'에서 '일본의 어업 및 포경업을 위한 인가구역의 설정(Areas Licenced for Japanese Fishing and Whaling)'에서 일본의 선박과 승무원은 독도로부터 12해리 이내에 접근하지 못하고 이 섬에 어떠한 접촉도 불가함을 명시함.

1947년
*8월 16∼25일. 한국산악회의 주관으로 [울릉도·독도 종합학술조사]를 실시함(단장 신석호). 각 섬들의 크기와 높이를 실측하고, 식물 및 수산물을 채집한 후 [산악회보고서]와 {수산}에 결과를 발표함.

1948년
*6월 8일 '미군 독도폭격 양민학살 사건' 발생.(독도를 미군의 폭격연습장으로 삼아 미군 폭격기의 무차별 폭격을 행하여 어민 150명~320명이 희생)
정부는 정부 수립 후 양민학살 사건을 미국 제5공군에 조회하였는데 미국 제5공군은 "독도와 그 근방에 출어 금지된 사실이 없었다. 독도는 극동 공군의 연습목표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회신만 답변.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발발.

1951년
*4월 25일
. 한국 정부가 미국 제5공군 당국에 독도 어민 피폭사건에 관해 조회함.
*5월 4일. 미국 제5공군은 독도 주변수역에 출어금지 조치를 한 사실이 없으며, 독도는 미 제5공군의 연습목표로 되지 않았다고 회신해 옴.
*6월. 독도 조난 어민 위령비 제막.

*7월 19일. 주미 한국 대사, 미일평화조약의 미국측 조인 초안에 일본의 영역권에서 제외되는 한국의 도서에 독도를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함.
*8월 10일 (한국 주미대사의 요청에 대해) 미국무부는 "독도에 관해서는 우리들의 정서에 의하면 한국의 일부로써 다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1905년경부터 시마네현 오끼지청 관할하에 있고, 이 섬은 예전에 한국에 의해 영토 주장이 이루어졌다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국의 수정요구를 거부.
*9월 8일. 미국과 일본간의 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이 체결됨. 조약 제2조 A항에는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권리·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음. 여기에 독도가 빠짐.

*10월 20일. 도쿄에서 SCAP측 옵서버가 출석한 상황하에 제1차 한일회담이  개최됨.

1952년
*1월 18일. 인접해양에 대한 대통령의 주권 선언(평화선 선언). 이승만 대통령은 독도와 그 영해가 포함된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평화선)을 선포.(1945년 9월 28일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의 선언에 따른 국제적 관행)
*1월 28일. 일본 정부는 평화선 선포에 대해 "다께시마는 의문의 여지없는 일본영토"라는 항의 구술서를 보냄에 따라 이후 한일간에 구술서를 통한 독도영유권 분쟁이 시작.
*2월 12일. 한국은 일본에 각서를 보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인함과 동시에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반박.
*2월 25일. 제1차 한일회담 경위서 발표.
*4월 25일. 맥아더 라인(MacArthur Line) 철폐.
*4월 28일. 미국 일본 간의 강화조약 발효.
*5월 28일. 일본 시마네현 어업시험장 소속 시험선 '시마네마루(島根丸)'호, 독도영해를 침범.
*6월 25일. 한국전쟁의 혼란을 틈타 일본 수산시험선(미국기 게양) 1척이 독도 침범, 일본인 9명이 독도(동도)에 입도하여 '독도 조난 어민 위령비'를 파괴함.
*6월 27일. 일본인 8명이 독도에 상륙하여 협박 및 파괴 행위를 함.
*6월 28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2척이 미국기를 게양하고 독도를 침범, 경계표목과 게시판을 설치함.
*7월. 일본순시선 일본국 영토표식하고 갔음. 일본국 시네마현 다케시마
*7월 12일. 일본 선박, 독도에 침범하여 한국 경찰과 충돌.
*7월 26일. 미일안보조약 실시를 위한 미일합동위원회에서 독도를 미국 공군의 연습지역으로 지정함.
*7월 27일. 한국전쟁(6·25전쟁) 휴전 성립.
*9월 8일. 대일강화조약체결(샌프란시스코 조약)
*9월 17일. 일본 수산시험청 선박이 독도에 침범, 일본 관리 다수가 독도에 상륙함.

1953년
*2월 27일
. 미국 공군은 한국 정부의 항의에 따라 독도를 미 공군 연습기지에서 제외함.
*4월 20일 '독도의용수비대'가 울릉군민에 의해 자발적으로 구성되어 독도에 상륙.
*5월  일본인들 독도상륙, 조난어부 위령비 파괴하고 일본영유권 표시. 독도의용수비대 일본인들 몰아냄

*6월 19일. 시마네현, 해방 이후에도 현 어민들에게 독도에 대한 어업허가권 발부함.
*6월 28일 일본 해상보안청이 순시선 2척으로 관리 30여명을 독도에 불법 상륙시켜 경계표를 설치
*7월. 변영태 외무부 장관 독도 성명 발표 (독도는 일본의 한국침략에 대한 최초의 희생지였다.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위덩어리가 아니라 한국 독립의 상징이다. 이 섬에 손을 대는 자는 모든 한국인의 완강한 저항을 각오하라.)
*7월 8일. 한국 국회는 독도를 일본의 침공으로부터 보전할 것을 결의. 

*7월 12일. 독도의용수비대가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에게 발포 위협을 가해 격퇴.
*7월 13일. 일본은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역사적 사실 등을 인용하며 주장(일본 정부 견해-Ⅰ, No.186/A2).
*9월 9일. 한국은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측 주장을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반박(한국측 구술서: 한국정부 견해-Ⅰ)

1954년
*5월 18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의 바위에 '한국령(韓國領)'이라는 문자를 새김.
*8월 1일. 한국은 독도에 항로표지인 등대를 설치하고 점화 개시.
*8월 23일. 일본,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문제를 제소할 것을 제의함.
*9월 15일 대한민국 체신부가 독도풍경이 그려진 우표를 2환짜리 500만장, 5환짜리 2000만장, 10환짜리 500만장 등을 각각 발행.(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같은 해 11월 29일에 구술서를 통해 우표발행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세계에 선전하려는 활동으로 항의.)
*9월 25일. 일본 정부는 구술서를 한국 정부에 보내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으로 위임하자고 제안.

*10월 28일. 한국,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실효적으로 한국의 영토이므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이유가 없다'고 이를 거부함.
*11월 21일.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인 오키호와 헤쿠라호가 독도 해안에 접근하여 독도의용수비대가 경고 사격을 하자 퇴각.

1955년
*
7월 8일. 한국, 독도에 신등대 설치.

1956년
*
12월 30일.독도의용수비대가 경북 경찰청 울릉경찰서에 독도경비업무를 인계.

1957년
*일본, 한국 관민의 독도 상주 및 등대 상존에 항의.

1959년
*8월
. 시마네현 총무부장, 독도 인광채굴에 대한 광구세와 연체금을 자국국민들에게 부과. 인광채굴권자는 1959년 8월 28일 합계금 35,480엔을 시마네현에 납부.
*9월 15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헤쿠라), 독도 영해를 침범.
*9월 28일. 일본 극우단체, 도쿄 히비야에서 24개의 극우단체가 '독도돌격대'를 조직하고 3척의 철선과 150명의 인원으로 독도탈취를 기도하다 실패함.

1960년
*일본, 한국의 등대 존속에 항의.

1961년
*한국, 일본의 항의에 반박.
*11월 9일. 동경지방재판소, 인광채굴권자가 시마네현을 상대로 '국가(일본)가 죽도(독도)에 대한 통치권을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광구세 납부의무 없음'에 대하여 항의하자, 광구소재지역에 대한 통치권이 상실된 경우가 아니라, 그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광구세의 무과징수권은 상실되지 않는다고 판결.

1962년
*7월 13일
. 김종필, 딘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에게 독도 폭파 제안함.(미국무부 외교문서 동북아시아-1961~1963)
*일본, 한국 아마추어 통신원의 독도 상륙활동에 항의.
*12월 22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오오끼), 독도 주변 해역을 순시.

1963년
*1월 8일
. 한국 경찰 순시선(화랑호), 시마네현에 표류.
*일본, 한국 경비정의 무기 반입에 항의.

1964년
*1월 31일
.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헤쿠라), 독도 주변 해역을 순시.
*일본, 한국 경찰의 독도 퇴거 요구.
*11월 12일. 김종필, 일본오오히라 외상에게 독도가 한일국교를 정상화 하는데 저해하는 요인이라면 이 섬을 폭파할 수도 있다고 제의함.(독도연구문헌접, 양태진편 P152참조)

1965년
*2월 13일
.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오오끼), 독도 주변 해역을 순시.
*6월 22일. '한일기본관계조약', '한일어업협정' 체결.
일본은 '분쟁 해결에 관한 교환 공문'에서 "이 교환공문의 '양국간 분쟁 해결에 관한 합의 조건'에 따라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은 일본측의 제안에 따를 의무가 있다."고 주장
한국, "이 교환공문은 '한일협정에서 발생하는 양국간의 분젱해결에 한정하는 합의 조건'이므로 한국의 영토임이 분명한 독도문제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
*12월 17일. 한국정부, 1953년 7월 13일의 일본 정부 견해(Ⅰ, No.186/A2)에 대해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임을 확인하는 답변서를 보냄.
*12월 18일. '한일기본관계조약', '한일어업협정' 발효.
*울릉도 주민 최종덕, 독도에 거주하면서 전복·소라·미역 등을 채취, 양식함.

1968년
*3월 13일
. 한국- 국유지등기 (일본 1906. 5월 17일 관유 토지대장에 등재)

1969년
*한국, 일본 순시선의 한국 영해 침범에 항의.

1972년
*일본, 한국의 반항구적 등대 설치계획에 항의.

1973년
*한국, 독도종합개발계획 수립.
*일본, 한국의 독도개발계획에 항의.

1974년
*1월 30일
.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양국에 인접한 대륙붕의 북부구역의 경계획정에 관한 협정' 체결.

1975년
*일본, 독도에서의 한국 관헌의 퇴거와 건물철거 요구.

1976년
*8월. [제2차 종합학술조사] (한국자연보존협회 주관) 실시, 《자연과보존》제22·23호에 결과 발표.

1977년
*1월 1일
일본의 12해리 영해법과 200해리 어업수역에 관한 잠정조치법을 시행. 상호주의에 따라 한국해역에는 어업수역법을 적용하지 않았으나 독도주변에는 고유영토론을 주장하면서 12해리 영해를 설정.
*2월 5일 후쿠다(福田) 수상이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발언.
*2월 7일 후쿠다 수상의 발언에 대해 한국정부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독도는 한구의 고유영토이므로 일본정부의 영유권 주장이나 관할권 행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힘.

*9월. [제3차울릉도·독도에 대한 학술조사](경북대학교 주관) 실시, {울릉도·독도답사기요}에 결과 발표.
*10월초. 최종덕씨 일가 독도로 주민등록 옮김.
*
12월 31일
영해법에 따라 독도주변에 영해 12해리를 설정.

1978년
*6월 22일
.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양국에 인접한 대륙붕의 북부구역의 경계획정에 관한 협정' 발효.

1979년
*12월
. 대한국제법학회, 독도학술연구조사.

1981년
*[제4차 종합학술조사](한국자연보존협회 주관) 실시, 울릉도 및 독도에 관한 지질·지형·생물·토양·해양·인문 등 조사, {울릉도 및 독도 종합학술조사보고서} 에 결과 발표.
*10월 14일. 최종덕씨가 최초로 주민등록을 독도로 등재.

1982년
*11월 16일
. 독도 해조류 번식지를 '천연기념물 제 336호'에 지정.
*독도는 우리땅 노래발표(노래 정광태, 작사 박문영) 금지당함.

1984년
*아베 신타로 외상, 독도영유권 망언

1987년
*9월
. 최종덕씨 사망.
*11월 2일. 송재욱씨 일가족 6명, 독도로 호적을 옮김.

1988년
*2월
. 최종덕의 딸 최경숙·사위 조준기 내외 독도의 유일한 주민으로 거주.
*9월 16일. 소련군용기, 독도근해를 비행.

1990년
*7월 27일
. 독도를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지정.

1991년
*11월 17일
. 김성도·김신열 부부가 독도로 전입(울릉군 울릉읍 산63번지).
*12월 27일. 독도에 일반전화 개통.

1992년
*2월 14일
. 약 50톤급 일본 순시선 1척, 독도영해를 침범.
*4월. 일본 극우단체(대일본정의국수회) 행동대원 2명이 주일한국대사관에 난입, '다께시마는 일본 땅'이라며 난동부림.
*11월 7일. 울릉도·독도지역, 특정지역으로 개발하기로 함.

1993년
*한일외무장관
회담때 무토 가분 외상,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일본영토 주장
*10월 29일.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독도가 한국땅임을 입증하는 고지도 발견.

1994년
*2월 11일
. 일본 해양경찰 소속 순시선, 독도영해를 침범.
*3월 24일. 1996년까지 독도 동도에 부두를 만들기로 계획수립.

1995년
*1월. 일본여당 총선에서 『독도침탈』용어사용
한국의 독도접안시설 공사 착공, 문제삼음

1996년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시 일본이 독도를 기점으로 삼을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한·일 양국 마찰.
*2월 9일. 일본외상 다께시마 영유권 천명, "죽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이니 한국은 경찰수비대를 즉각 철수시키고 부착한 시설물을 철거하라" 요구. (일본측 주장에 대해) 한국정부는 "독도는 한국 고유의 영토이고, 한국이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영토이기 때문에 이러한 접안공사는 한국의 정당한 주권행사이므로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밝혀 독도 주변수역을 공동관리수역으로 할 수 없음을 주장.
*4월. 접안 시설 공사 개시
*6월 5일. 일본은 독도 기점으로 200해리 EEZ채택을 결의하고 독도를 일본EEZ의 기점으로 취한다고 발표함. (EEZ구획선을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확정하였음을 선언함)
*6월 27일. 경북경찰청, 울릉경비대 신설. 울릉경비대 산하에 독도경비대.
*10월. 하시모토 류타로, 독도 영유권 주장

*10월 20일. 일본자민당, 독도·조어도·쿠릴열도 확보를 총선 공양으로 내세움.

1997년
*1월
. 일본 외교백서에서 일본 외교 10대 지침의 하나로 독도 탈환외교 방침을 설정하였음.
*3월 10일. 독도사랑 전화번호 확정.
한국통신 대구본부는 10일 지난달 11일부터 보름동안 독도상징 전화번호를 공모해 심사한 결과 "동해의 외로운섬, 국토의 막내둥이, 국토사랑 1번지"란 뜻을 담고 있는 791-0001번을 고유번호로 확정. 지역번호는 울릉도 권역과 같은 0566번. 이번 공모에는 전국에서 모두 1천3백 여명이 응모했는데 채택된 전화번호는 독도경비대의 착신전용전화에 붙여져 이달 말께 개통될 예정.
*4월 11일. 일본 자민당은 독도 영유권문제와 관련해 "독도는 일본 영토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처할 각오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외교정책지침을 마련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보도. 자민당은 지침에서 독도에 관한 이 같은 주장과 함께 "영토문제를 분리해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 및 (한-일) 어업협정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
*6월 2일. 일본정부, 독도개발계획 철회요구.
일본 정부는 독도(일본명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라고 거듭 주장하면서 해양수산부가 최근 발표한 '21세기 해양수산 비전'의 일환인 독도 개발계획을 철회해달라고 요청. 일본 외무성 가토 료조 아주국장은 이날 주일 한국대사관 김용규 공사와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아펙) 환경각료회의 등에서 양국이 협조하는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독도 개발계획을 중지해달라고 요구.
*7월. 한국정부는 울릉도를 한국 EEZ 기점으로 취한다고 발표함. 그후 양국 EEZ 구획선을 울릉도와 오키도의 중간선을 제의함(1년 2개월후)
*8월. 울릉도 약수공원에 독도박물관(관장 이종학) 개관
*11월 6일.  독도 동도에 접안시설 준공. 접안능력 500톤급, 총사업비 172억 4천3백만원, 면적 569평.

(한국이 울릉도에서 독도 접안시설공사 준공식을 치르자) 일본은 극우파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행사를 소규모로 해줄 것을 요청함. 야나이 외무성차관이 김태지대사에게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이므로 독도에 건설한 시설을 모두 철거하라"고 요구.
일본정부 한국의 독도 접안시설 완공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시설철거를 요구. 외무부 당국자는 "야나이 순지 일 외무성 사무차관이 이날 오후 김태지 주일대사를 불러 독도접안시설 완공에 대해 항의하고, 이를 철거할 것을 요구해 왔다"면서 "김 대사는 독도의 우리 고유의 영토이므로 일본쪽의 '항의'는 전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힘.
*11월 21일. 독도 서도에 '어민숙소'를 서도에 준공. 35.97평에 2층건물로 수용인원 25명, 총사업비 4억 8천만원.
*12월 13일. 법률 제5447호로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 보존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1998년
*1월
. 일본, 독도주변 해역에 해저광케이블 설치공사. 일본, 1965년 체결된 한일어업협정 일방 파기.
*1월 7일. 일본 해양순시선이 독도 북방 10.5마일 해상에서 표류중인 국적불명의 선박을 인양한다며 한국 해군의 경고를 무시하고 독도 주변 영해를 침범. 외무부는 일본 순시선이 선박 구조라는 인도적 목적이긴 하지만 한국 해군의 경고를 무시하고 영해를 침범한 것은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8일 외교경로를 통해 강력히 항의.
*9월.
한-일어업협정 개정협상이 2년4개월 만에 타결되어 독도를 한일어업공동위원회 관리를 받는 수역에 포함하는 '신한일어업협정'에 서명.
(이번 협상에서 한-일 양국은 동해에 양쪽 연안으로부터 35해리 떨어지고, 동경 135도30분과 동경 131도40분을 동.서 경계선으로 하는 "금붕어" 모양의 중간수역을 설정. 또 두 나라는 중간수역을 제외한 자국 연안의 "배타적 어업수역"을 사실상의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획득.)
*11월. 일본자위대, '동해의 한섬'을 가상한 적 점령섬 양륙훈련 실시. 황도(이오지마섬)극비 종합상륙훈련 실시 "동해의 어떤섬(한국의 독도)탈환작전". 2차대전 때 25000명의 일본 군인이 장렬하게 전원 전사한 곳임
*11월 9일. 농림해양수산위의 해양수산부 국감에서 이완구 의원(자민련)은 한-일 어업협정과 관련해 "독도 주변을 중간수역으로 설정해 172억원의 예산을 들여 설치한 접안시설 등 독도 유인화작업의 실익이 상실됐다"며 "독도 인근에 배타적 경제수역을 설정하고, 이번 협상에서 체결된 중간수역의 성격을 '공해'로 명시해 독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지배를 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

1999년
*1월 22일
. 신한일 어업 협정 체결. 독도 중간수역에 포함(한·일 공동관리수역)
*1월 27일.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 공포. 본 어업협정으로 동해 잠정조치 수역이 독도 및 주변 수역을 둘러싸고 있어 독도의 주권을 훼손하였다는 비판이 제기됨.
*3월 1일, 1951년 체결된 미-일 평화협정 초안이 독도를 한국령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 밝혀짐.
(미국 국립문서기록보존소에 보관된 이 평화협정 초안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일본에 대한 미 군정책임자였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자필로 일본은 독도에서 떠나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명기. 이 협정초안은 일본이 한국으로 영유권을 넘겨야 할 한반도 주변의 섬들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및 독도 등 4개 도서를 명시. 이는 당시 일본을 점령한 미 군사령부가 독도를 한국령으로 공식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것.)
*3월 10일. '독도 유인등대' 점등. 1997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98년 12월에 시험가동을 끝냄. 유인등대는 서도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양수산부 독도항로표지관리소 직원이 상주.
*4월 12일.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확인시킬 1910년판 일본인 제작 지도를 처음으로 발견.
(독도 영유권 문제를 연구해온 이진명(53.한국학) 프랑스 리옹3대학 교수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중인 50쪽 분량의 (대일본분현지도첩)에 나란히 실린 '조선전도'와 '일본 시마네현 전도'를 공개. 이 교수가 공개한 지도첩은 한일병합 직후인 1910년 일본 박애관출판사가 제작한 것인데, 조선전도에는 독도를 칭하는 '죽도'(다케시마)가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표기돼 있으나 일본 시마네현 전도에는 독도가 없음. 이 교수는 "일본인이 제작한 지도첩에 독도가 조선의 영토로 표기돼 있고, 정작 일본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며 "이는 그동안 일본이 '독도는 1905년에 일본 시마네현에 편입됐다'며 영유권을 주장해온 근거가 희박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밝힘. 이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로 이름 붙였다는 사실을 주요 근거로 독도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해온 상황. 그러나 정작 1910년에 일본인이 제작한 지도첩에 포함된 시마네현 전도에는 독도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 이 교수는 "일본의 권위있는 지도 제작자인 이토 세이조가 지도첩을 만들고 도쿄에서 발행한 점으로 미뤄 당시 일본인 사이에 '독도는 조선 땅'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말함.)
*8월. 미국의 대학 지리교재인 {지오그래피}(렐름스, 리전스 앤드 컨셉츠)가 최신 개정판에서 동해의 영문 명칭인 '이스트 시(East Sea)'를 주명칭으로 표기.
*11월. 일본인의 독도로 호적이전 사실 뒤늦게 확인, 1999년 12월 현재 6가구 7명 확인.
*12월 22일. 한-일 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내 입어협상 타결.
*12월 26일. 한국정부, 일본 주민의 독도로의 호적 이전을 확인하고 일본측에 항의서한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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