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다케시마(한국명・독도)를 둘러싸고 (시마네)현이 정한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인 22일, 현민회관(마쓰에시 도노마치 소재)에서 기념식전이 개최되었다. 한국이 다케시마(독도) 실효지배를 강화하는 가운데, 관계자는「영토권 확립을 위해 국가는 하루라도 빨리 외교교섭을(領土権の確立に向け、国は一刻も早い外交交渉を)」주장했다. 기념식이 개최된 주변에는 정치단체의 가두차량과 한국의 시민들이 모여 (시마네)현경찰이 약300명 태세로 경계근무를 섰다.
7번째인 올해는 현민 외 약500명이 참가. 겐바 외상을 비롯한 각료의 출석은 없었다. 국회의원은 지역선출을 포함해 11명(작년 13명)이 참가. 살펴보면 민주당이 4명, 자민당이 5명, 국민신당이 1명, 신당대지・진민주(新党大地・真民主)가 1명이었다.
다케시마(독도)를 둘러싸고 한국 측은 작년에 각료와 국회의원이 (독도에)입도. 11월에는 관광시설과 대형부두 등을 건설하는 계획도 밝혔다. 한편으로는 다케시마(독도) 근처의 울릉도에 상륙하려 한 일본 국회의원의 입국을 거부한 바 있다.
(기념)식전에서 미조구치 (시마네현)지사는 한국 측의 움직임을 「실효지배의 기성사실화로 결코 용인할 수 없다(実効支配の既成事実化で、決して容認できない)」고 비판. 정부에
- 영토권확립을 위한 외교교섭
- 다케시마(독도)문제를 취급하는 국가조직설치
등을 요구하는 요망서를 출석한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전달했다.
초당파 「일본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의원연맹(日本の領土を守るため行動する議員連盟)」의 사무국장인 민주당의 나가오 다카시(長尾敬) 중의원 의원도 단상에 서 「영토의식이 결여된 국가는 성립될 수 없다. 세계에 국가로서의 의사를 내보여야 한다(領土意識を欠いた国家は成り立たない。世界に国家としての意思を示すべき)」고 주장. 이후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문제연구회」의 좌장인 시모죠 마사오・타쿠쇼꾸대학 교수를 포함한 3명이 대담. 일한 양국의 사고의 차이를 넘어 외교교섭을 시작해야 할 중요성을 지적했다.
또한 자민당의 국회의원을 포함한 6명이 마쓰에 시내에서 가두연설. 자민당의 청년국장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중의원 의원은 「(해당)지역을 방문하고 다케시마(독도)에 거는 강한 마음을 느꼈다. 영토문제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확산시키고 싶다(地元を訪れ、竹島にかける強い思いを感じた。領土問題に対する若い世代の関心を広げたい)」고 말했다. 고이즈미 등은 이후, 현청 내 다케시마자료실을 견학했다.
현 경찰에 따르면 기념식장 주변에는 가두차량 약50대가 모여 가두활동을 했다고 한다. 한국인 운동가가 현의 다케시마문제연구회 등과의 토론을 요구. 「독도문제해결을 위한 공개토론을 요청한다」라는 등, 일본어로 쓰인 종이를 손에 들고 현 직원에게 다가가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왜 2월 22일은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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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제도(隠岐諸島)의 북서 약157킬로미터 일본해에 떠 있는 서도와 동도, 수십 개의 암초로 구성된다. 총 면적은 21만 평방킬로미터. 일대는 예부터 어류가 풍부해 일본은 오키노시마쵸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약215킬로미터의 거리로 이승만대통령이 1952년, 한반도 주위 약200해리 수역에 「이승만라인」을 설정. 일방적으로 한국령에 포함시켜버렸다. 그 후에도 실효지배를 계속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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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에 시마네현이 조례로 제정했다. 다케시마(독도)영토권 조기 확립을 위해 여론 계몽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 2월 22일은 1905년에 메이지정부가 다케시마(독도)를 시마네현 소관으로 정한 후, 지사가 고시한 날에 해당한다. 반면, 한국・경상북도도 2005년 7월, 매년 10월을 「독도의 날」로 정해 대항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