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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전문 작가 김경진의 한·일 독도 전쟁 시나리오 2 | ||||||||||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8/09/03/200809030500028/200809030500028_8.html 시라네는 익산함의 함미 76mm 포를 노렸다. 그러나 정확도에 한계가 있는127mm 유인함포는 엉뚱하게도 익산함 72포의 갑판 아래에 연달아 명중했다. 127mm 포탄이 갑판과 상비탄약고 벽을 뚫고 들어가 76mm 함포 아래 급탄회전대에 명중해버렸다. 폭발 섬광에 뒤이어서 화염이 크게 솟구쳤다. 시커먼 연기가 동해바다 위로 솟아올랐다. 익산함은 함미 함포가 있던 부분에서 두 동강이 났고, 함미가 위로 솟구치더니 곧바로 가라앉았다. 72포 요원들과 기관병들이 한꺼번에 수장됐다. 그러나 익산함은 바로 침몰하지 않았다. 함미 3분의 1을 잃은 익산함은 북북서로 천천히 표류해갔다. 바닷물이 세차게 익산함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승조원들은 함포전보다는 일단 배를 구하기 위해 바닷물을 상대로 싸워야 했다. “쏴! 쏴! 빨리 쏴서 시라네를 죽여!” 정상용 중령이 안타깝게 소리질렀다. 사통관이 함수 함포를 다시 발사했지만 시라네의 진행방향 앞에 물기둥만 일으켰다. 방법이 없었다.
7. 함상전투
한국과 일본 함정들은 치열하게 싸웠다. 함수 주포가 파괴되고, 기관포가 박살 나고, 기관총 실탄이 떨어질 때까지 양국 승조원들은 처절하게 싸웠다. 급기야 승조원들이 소총을 들고 갑판에 나왔다. 21세기 미사일 시대에 한국과 일본 승조원들은 마치 임진왜란 때처럼 서로의 배를 향해 총질을 해댔다. 초반 총격전은 1함대에 유리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승조원 숫자가 많은 일본의 우세로 돌아섰다. 드디어 함정들이 접현하고, 불타는 한국 함정으로 일본 해자대원들이 뛰어들었다. 여기서부터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북한 선박을 조사하기 위해 함정마다 입입조사대(立入調査隊)라는 임검팀을 편성한 일본 측이 크게 유리했다. 조직력을 갖추고 함상전투에 대비한 훈련을 받았으며, 권총 등 함상전투에 어울리는 무장을 준비한 일본 해자대원들이 한국 해군을 밀어붙였다. 울산급과 포항급 함정 내부에서 처절한 싸움이 계속됐다. 권총과 기관단총을 쏘는 해자대에 맞서 한국 해군 승조원들은 손도끼, 지주, 몽둥이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맞서 싸웠다. 당연히 한국 승조원들의 피해가 급증했다.
바로 이때 5전단 함정들이 독도에 도착했다. 5전단 함정들은 사세보에서 출항해 독도해역으로 향하던 7호위대 무라사메급 함정 세 척을 중간에서 만났다. 이들을 대공미사일을 대함공격으로 전용해 격파하느라 시간이 약간 더 걸렸다. 독도해역에서 함포전을 치른 해상자위대 함정들은 모든 무장을 사용할 수 없어 한국 해군 함정들에 모조리 나포돼버렸다. 이지스함 아타고와 묘코도 이때 나포됐다. 이지스함까지 모조리 함포전에 동원한 것은 분명 일본의 패착이었으나, 1함대보다 독도해역 집결시간이 늦은 3호위대군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각 오미나토에서 출항한 15호위대 함정 세 척도 독도 동쪽 100km까지 접근해왔다. 15호위대는 한국과 일본 함정들이 뒤섞인 독도해역을 향해 대함미사일 공격을 가할 수 없었다. 대공방어력을 상실한 일본 호위함에 더 큰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망가는 15호위대 함정 세 척을 향해 5전단이 대함미사일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실 군사적인 판단에 따르자면 일본은 이쯤에서 백기를 들고 물러서는 것이 정상이다. 독도해역에서 함포전과 처절한 함상전투를 전개할 경우 포로로 잡힌 해상자위대원이 1000명 단위까지 늘어날 것이므로, 이들을 두고 다른 전투행위를 지속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15호위대 승조원들의 목숨도 경각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측면을 생각하자면,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이 다른 선택을 할 개연성은 있다. 총리 내각, 의회가 확전을 결의할 가능성이다. 한국보다 두 배나 많은 방위예산을 투입해온 정치인들은 국민의 비난이 두려울 수밖에 없고, 한국 해군보다 7배나 많은 예산을 쓰는 해상자위대도 승리에 목이 마를 것이다. 이 경우 확전을 결정한 일본 측이 취할 수 있는 군사적 조치는 대한해협 진격이다. 사세보의 2호위대군과 구레(吳)의 4호위대군, 요코스카(橫須賀)의 1호위대군에 총출동을 명령해 대한해협에 집결시키는 것이다. 한국 합동참모본부가 이에 대응하자면 3함대와 2함대를 동원하고, 독도해역에 갔던 5전단에 부산으로 귀환하라고 지시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전쟁은 이런 식으로 점점 확대돼 나갈 수 있다. 공군의 경우를 보자. 한국인들은 성능이 우수하고 숫자도 압도적인 일본 전투기들이 부산을 공격하거나 울산과 포항을 비롯해 남동임해공업단지를 폭격할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일본 전투기들에는 장거리에서 지상목표를 공격할 수단이 없다. 전범국가인 일본은 공격무기 도입을 금지해 왔기 때문이다. 사거리 27km짜리 매버릭 미사일을 달고 있는 일본 F2 지원기들이 날아와봐야 한국 전투기와 방공부대의 미사일에 줄줄이 격추될 것이다. 대한해협 진격 결정과 함께 일본 전투기들이 부산에 접근한다 해도 한국 전투기들이 대응하면 대마도 남쪽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속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8/09/03/200809030500028/200809030500028_9.html 8. 대마도 점령
일본 1,2,4 호위대군의 총출동과 함께 대한해협에서는 전운이 피어났다. 한국 함대와 일본 함대는 대함미사일 사거리인 150km 바깥에서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일본이 30척 내외의 함정을 동원한 반면, 한국은 윤영하급 미사일고속함까지 총동원해 50척 가까이가 현장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지스 방공호위함이 일본에 네 척, 한국에 두 척 있고, 일본 측 신형 호위함인 19DD의 방공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방어력은 일본이 앞섰다. 한국과 일본 함대가 결전을 벌인다면 승패를 가늠하기 힘들었고 승부를 떠나 대공방어력이 취약한 한국 함대는 무조건 전멸한다고 봐야 했다. 양측이 동원한 이지스함은 사거리가 긴 SM2 함대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투기는 인근 해역에 진입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함대공미사일로 무장한 전투기들이 대한해협에 진입할라치면 상대방이 요격용 전투기를 동원해 공격침로를 차단했다. 대함공격을 맡은 전투기나 지원기 주변에는 제공임무를 맡은 전투기 편대가 있으므로 공중전은 주로 전투기와 전투기끼리 이뤄졌다. 그 사이 양국 함대는 지루한 대치를 계속했다. 두다다다다! 거제도에서 이륙한 헬리콥터 수십대가 바다 위를 고속으로 비행했다. 파도에 스칠 정도로 낮게 저공비행하는 헬기들은 해병대원들을 가득 싣고 대마도로 향했다. 대마도 북쪽에는 레이더기지가 있다. 부산과 진해, 한국 해군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이 레이더기지의 존재는 한국 입장에서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마도를 통틀어 병력은 1개 중대에 불과하고 무장 수준이 낮은 대마경비대와 몇몇 분견대가 주둔할 뿐이다. 대함미사일이나 대공미사일 기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이런 대마도에 한국 해병 제1상륙사단은 1개 대대를 투입했다. “그냥 시골 공항이군.” 대마도공항에 착륙한 헬기에서 내린 해병 대대장의 소감은 단순했다. 대마도는 산이 많고 평지가 극히 적다. 그래서 군사목표가 될 만한 곳도 적다. 상대마도와 접한 하대마도 북동쪽 쓰시마공항에 대대지휘소를 설치한 대대장에게 휘하 부대가 목표를 장악했다는 보고가 연이어 들어왔다. 북대마도인 가미아가타마치 북쪽 끝 섬에 항공자위대 레이더기지, 가미아가타마치 북서쪽과 쓰시마공항 북쪽에 해상자위대 분견대, 사스나(佐須奈)항의 북쓰시마 경찰서, 가미쓰시마마치의 히타카쓰(比田勝)항과 히타카쓰 해상보안서, 남대마도의 이즈하라(嚴源)항과 남쓰시마 경찰서, 이즈하라항 북쪽 육상자위대 쓰시마경비대, 이즈하라 남쪽 해상자위대 쓰시마 경비소. 이걸로 끝이었다. 인구 4만이 거주하는 손바닥만한 섬인데도 군사목표가 많은 편이었다. 각 기지나 주둔지에서 비상경계 중이던 자위대원들은 한국 헬기가 나타나자마자 항복하기 바빴다. 전투는 없었다. 저항해봐야 한국군이 증파될 것이 뻔했기에 자위대원들은 아예 저항을 포기했다. 자위대 주둔지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주민들의 주거지마다 해병대원들이 순찰을 돌았다. 일본 TV방송국의 생방송이 진행되자 한국 해병대원들은 일부러 발을 맞춰 걸어 점령군의 군홧발 소리를 강조했다. 한국 해병대의 기습으로 인해 일본 시민 4만1000여 명이 한국군 손에 떨어졌다.
9. 대한해협 해전 2호위대군 사령 다카야나기 요시히사 해장보는 고민이 많았다. 한국 해군함대와 대치하는 중인데도 총리는 먼저 쓰시마를 탈환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치인들은 4만여 명이나 되는 국민이 적국의 손에 들어간 상황을 참지 못했다. 다카야나기 해장보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나 바야흐로 대규모 해전이 벌어지기 직전인데 한국 해군을 밀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쓰시마에 접근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하겠나, 명령을 따를 밖에….” 다카야나기 해장보는 오오스미급 상륙함들을 중심에 두고 쓰시마로 접근했다. 특수전 훈련을 받은 특별경비대 3개 소대 60명을 중심으로 하는 지상병력이 오오스미에 탑승하고 있었다. 이들을 헬기로 강습시켜 쓰시마를 차근차근 탈환할 계획이었다. 호위대군 막료가 보고했다. “사령! 한국 해군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조기경보기 E767에서 전해준 정보가 전술화면에 끊임없이 갱신됐다. 그 순간, 다카야나기 해장보는 한국이 대마도를 점령한 것은 해상자위대 함정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술책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때가 이미 늦었다. 독도해역에서 선제공격을 당한 것에 분풀이하듯 이번에는 한국 해군이 선제공격을 가했다. 레이더에 등장하는 대함미사일 숫자가 초당 10여 발씩 늘어났다. (계속)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8/09/03/200809030500028/200809030500028_10.html “즉각 반격하라!” 다카야나기 해장보가 휘하 2호위대군과 4호위대군, 1호위대군, 11호위대, 12호위대, 13호위대 함정들에 지시했다. 헬기호위함 휴우가(ひゅうが)와 오오스미급 상륙함을 제외한 전 함정이 SSM1B 대함미사일, 또는 하푼미사일을 발사했다. 한국 해군이 발사한 하푼과 해성 대함미사일이 시시각각 해자대 함정들에 접근하고 있었다. “쓰시마에서 대함미사일 공격입니다!” 호위대군 지휘통제실에서 막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대한해협은 물동량이 많은데도 한국과 일본 함정들이 대치하느라 대한해협 서수도(西水道)를 전쟁해역으로 선포해 선박의 통항을 막지 못한 것이 실책이었다. 한국 해군은 전차상륙함 네 척을 총동원해 대함미사일 발사차량을 쓰시마로 실어 날랐다. 지대함미사일은 발사지휘차량, 레이더차량, 대함미사일 발사차량 2대, 미사일 운반차량 1대로 한 팀이 구성된다. 최소 다섯 팀이 해성 대함미사일과 하푼을 40발이나 퍼부었다. 이충무공급 구축함,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울산급 호위함은 물론 포항급 초계함과 윤영하급 유도탄고속함도 미사일을 8발씩이나 발사했다. 이것만 해도 일본의 계산을 훌쩍 넘어선 엄청난 숫자였다. 그런데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은 해성 대함미사일을 16발씩 발사하고, 여기에 더해 천룡 순항미사일 32발씩 추가로 발사했다. 400발에 가까운 대함미사일의 물결이 해상자위대 함정들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쇄도했다. “방어력은 우리가 훨씬 우세하다.” 다카야나기 해장보는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러나 그도 자신은 없었다. 함재기부터 이지스 순양함과 이지스 구축함으로 겹겹이 방어막을 쌓은 미국 항모전단의 대공방어력은 대함미사일 200발 이하로 평가된다. 그러나 날아오는 미사일은 대함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합해 400발에 달했다. 게다가 그것으로도 끝이 아니었다. 부산으로 이동 배치된 대함미사일 발사차량들이 공격에 동참했다. 대구에서 날아온 F15K 전투기들도 하푼을 발사했다. 수평선이 온통 미사일로 새까맣게 뒤덮힐 지경이었다. 해전은 전자전으로 시작됐다. 레이더 고도계가 교란당한 미사일은 곧 추락하고 탐색기가 교란된 미사일은 전자전을 실시한 함정을 향해 직진했다. 주로 1980년대에 도입된 미제 하푼 대함미사일이 전자전에 취약해 많이 추락했다. 그러나 양국의 주력 대함미사일인 해룡과 SSM1B는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순항고도에 접어들었다. 대함미사일이 상대방 함대에 접근하면서 앞부분의 탐색기를 가동시켰다. 그전에 양국 함대의 이지스함들은 장거리에서부터 대함미사일 요격을 실시했다. 미사일과 미사일이 만나자 붉은 불꽃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났다. 그러나 대함미사일은 너무 많았고, 이지스함이 구성한 방공망을 마구 뚫고 들어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개함방공능력을 갖춘 범용 호위함들도 대함미사일 요격전에 참가해 날아오는 미사일 숫자를 차근차근 줄여나갔다. 해성 대함미사일이 표적을 탐색한 다음 해면밀착비행에 들어갔다. 해성 대함미사일은 바다 표면을 배경 삼아 이지스함을 제외한 함정들의 요격임무를 곤란케 했다. 뱀처럼 꾸불꾸불 기어가듯 수시로 방향을 바꾸는 종말회피기동을 한 해성 대함미사일은 20mm 벌컨 팰렁스의 탄막을 뚫고 각자 목표에 돌입했다. 미사일에 피격당한 호위함들이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미끼로 발사된 천룡 미사일은 수많은 변침점이 설정되어 마치 대함미사일처럼 움직임으로써 일본 이지스함의 대공방어능력을 포화상태로 만들었다. 일본 함대는 외곽에 배치된 함정부터 하나하나 대함미사일에 피격되기 시작했다. 끝까지 싸우던 이지스함들도 결국은 피격됐고, 마지막에는 헬기호위함 휴우가와 오오스미급 상륙함들도 대함미사일 서너 발씩을 맞아 거친 현해탄에 침몰했다. 미사일 서너 발에 피격돼 전투력을 상실하고 표류하던 함정은 물론 침몰 중인 함정도 끊임없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방어력을 압도하는 과도한 대함미사일 공격을 받은 결과였다. 한국 해군도 마찬가지 과정을 밟았다. 대공방어력이 약한 울산급과 포항급 함정들부터 미사일의 비를 맞아 침몰해갔다. 상대적으로 대형인 일본 호위함들이 대함미사일 서너 발을 맞아야 침몰한 반면, 작은 한국 해군함정들은 한두 발에 침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함정보다 중요한 숙련된 승조원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한국 해군에서 이지스 구축함 두 척과 충무공이순신급 네 척, 광개토대왕급 한 척은 살아남았다. KD시리즈 함정들은 대공방어력이 우수한데다 RCS(레이더전파반사면적)이 작고 적외선을 적게 방출하는 디자인이 적용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KD시리즈보다 구형인 함정들에 일본의 대함미사일 공격이 집중됐다. 살아남은 전력은 일본 측의 잔존 수상함 세력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뒤늦게 일본 해상초계기들이 대함미사일로 무장하고 날아왔다. 그러나 한국 공군 전투기들과 이지스함들이 초계기들을 학살했다. 하늘에서는 한국과 일본 전투기들이 여전히 팽팽히 대치했으나,
해전이 끝난 직후 한국은 규슈에 상륙하려는 제스처를 취했고, 일본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미국이 개입해 중재에 나섰다. 한국 해병대가 대마도에서 퇴각하는 조건으로 일본은 막대한 배상금을 한국에 물어야 했다. 해상세력이 재건되는 날까지 일본 호위함과 순시선들은 독도에 감히 얼씬하지도 못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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