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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의 독도 영유권 날조 방식 :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라는 증거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도’(독도)를 부정한다
독도 이상훈  (Homepage) 2020-10-20 17:42:21, 조회 : 286, 추천 : 83

http://www.newg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5792

日의 독도 영유권 날조 방식 :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라는 증거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도’(독도)를 부정한다.

  • 최장근 교수   승인 2020.10.19 20:03
  •                                                                최장근 교수.

>                                                                              최장근 교수.
독도는 고대 우산국시대 울릉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을 때는 동해상의 무인도 고도(孤島)의 암초로서 존재였다.

오늘날의 독도는 위치적으로 한국사람이 사는 울릉도에서 87.4km 거리에 위치하여 울릉도에서 바라다 보이는

거리에 있고, 반면, 일본사람들이 사는 오키섬에서는 157.5km나 떨어져 있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거리(100km) 밖에 있다.

따라서 과거 일본에서는 자연스럽게 독도를 영토로서 인식할 수 없었고, 한국에서는 울릉도에서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는

고유영토로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독도가 고유영토로서 문헌기록상 처음 등장하는 곳이 바로 1454년 집필된

관찬문헌 ‘세종실록’(지리지)이다. 


즉 “우산도와 무릉도 두 섬은 날씨가 맑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서로 바라다 볼 수 있다”라고 하여 영토로서

동해에 ‘2개의 섬’이 존재한다고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우산도’는 오늘날의 독도로서 분명히 울릉도와 함께

조선조정이 영토로서 인식하여 관리했던 섬이다.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도’(독도)에 관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❶ 고대 우산국시대와 고려시대 울릉도에 사람이 살았을 때는 울릉도에서 우산도(독도)가 바라다 보이기 때문에

독도의 형상이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❷ 독도는 울릉도에서 바라다 보이지만,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2개의 암초(동도와 서도)로 되어있어 조선시대 울릉도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을 때는 독도의 위치나 형상에 대한 인지는 서서히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❸ 고대시대의 독도는 섬의 가치면에서 중요하지 않은 암초이기 때문에 문헌상으로 기록이 남아있을 수 없는 섬이다.

❹ 조선시대에는 고대 우산국시대와 고려시대에 동해에 울릉도와 더불어 또 다른 섬(독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전해졌지만,

섬의 위치나 형상에 대해 알 수 없었다.

❺ 조선 조정이 1403년부터 울릉도를 비워서 영토관리를 시작하면서 동해 두 섬으로서 울릉도 이외의 섬에 대해 ‘우산도’라는

명칭을 만들었다. 울릉도를 비워서 관리한 이유는 백성들이 군역을 회피하여 울릉도에 피신하고, 또한 여진족과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울릉도에 거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❻ 조선초기 우산도의 명칭은 만들어졌지만, 우산도의 섬의 위치나 형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울릉도처럼 사람이 사는

섬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❼ 울릉도를 비우기 위해 도민을 쇄환하는 과정에 1417년과 1425년 조선 조정은 울릉도와 우산도에 안무사 김인우를

파견하여 2섬을 관리하도록 하였는데, 동해에 사람이 거주하는 2개의 섬이 영토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❽ ‘세종실록’(지리지)는 실제로 울릉도에 사람이 살았던 고대와 고려시대의 인식을 바탕으로 두 섬을 영토로서 인식하고,

“동해에 두 섬은 바람이 불고 맑은 날에만 서로 보인다”고 영토로서 2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리지에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겨 관리했다.

❾ 1531년 동국여지승람에도 동해 2섬을 영토로서 관리하게 위해 ‘팔도총도’를 그렸는데, 섬의 위치와 형상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우산도를 울릉도보다 약간 작게 그려서 동해의 2섬 모두 살 수 있는

섬처럼 비슷한 크기로 그렸다. 이처럼 조선조정이 동해에 위치한 울릉도와 우산도를 영토로서 2개의 섬을 관리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반면 그 당시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영토로서 인식조차하지 못했다. 


일본이 독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625년부터 1693년 안용복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조선영토인 울릉도에 몰래

도해하였을 때 그 길목에 위치한 독도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독도는 단지 바위섬에 불과했기 때문에

당시 왕래했던 어부들은 물론이고, 중앙정부나 지방관청에서는 영토로서 관심조차도 없었다. 안용복 사건으로

중앙정부인 막부가 울릉도와 더불어 독도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는 독도를 “울릉도 내의 섬”이라고 하여 울릉도의

부속섬으로써 조선영토로 인식하였다. 근대 메이지정부도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 때 몰래 독도를 도취하려하기

이전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세종실록’(지리지)는 독도가 ‘우산도’라는 이름으로 타국의 지배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울릉도와 더불어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증명하는 최초의 유력한 증거물이다.

일본은 이러한 명확한 증거조차도 현재의 관점을 적용하여 ‘세종실록’(지리지)에 우산도가 울릉도 동남쪽에 위치하는

두 개의 바위섬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하여 지금의 독도가 아니라고 사실을 날조하고 있다. 15세기의 무인 암초인

독도의 ‘위치와 형상’을 정확히 표현하려면 사료를 해석할 때 15세기의 관점에서 해석해야한다.

15세기의 섬을 21세기의 관점으로 해석을 하는 것은 비과학적 논리로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기 위한 날조 행위이다.

아래는 일본이 날조한 논리이다.


첫째,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고 명백히 증명되는 고문헌과 고지도는 없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사와 실제 "독도는 맑은

날에는 울릉도에서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하는 지리적 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의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이 ‘세종실록’(지리지) 기사와 지리적 여건을 연결하며 "한국이 독도를 한국영토로서 명백하게 인식하였다는 사실은

고문헌과 고지도가 증명한다"라고 하는 것은, 고문헌이나 고지도에 있는 우산도를 어떻게든 독도라고 우기고 싶기 때문이다.

 
셋째, 사실 ‘세종실록’(지리지)는 우산도의 소재도 명확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지리지'로서는 미완성 원고이다.

이것은 우산도에 관해 어떠한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한국이 ‘세종실록’(지리지)을 바탕으로 독도가 한국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애매함을 이용하여 우산도를 독도라고 강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한국의 이런 논리는 ‘세종실록’‘지리지’ 등을 저본으로 편찬된 ‘신증 동국여지승람’과 비교하면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왜냐하면 동국여지승람 분주(分註)에 “일설에 우산도와 울릉도는 원래 1도”라 했고, ‘세종실록’(지리지)’과 같은 시대에

쓰여진 ‘고려사’(지리지)의 분주에는 ‘때로는 우산도, 무릉도라고 하여 원래 2도’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때에 따라 1섬이라기도 하고 2섬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분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산도가 울릉도인지 아닌지를 말하는 것이고, 우산도는 지금의 독도와 무관하다.

이처럼 ‘세종실록’(지리지)과 그 같은 시점에 기록된 고문헌에는 지금의 독도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이상과 같이, 오늘날 독도와 ‘세종실록’(지리지)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논리는 일본이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기 위해 비과학적 방법으로 사실을 날조한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우산도와 울릉도 2섬은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고 하여 분명히

동해에 2섬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핵심적인 내용을 무시하고 “일설”을 위주로 사료를 해석하는 것은 독도의 영유권을

날조행위이다.

최장근 교수 tlm552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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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일간경북신문(http://www.newgbnews.com)

  • 기자명 최장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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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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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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