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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정부는 독도문제 말도 못하게했다
이상훈  (Homepage) 2012-07-08 18:02:47, 조회 : 1,155, 추천 : 134



        
        
        
:master()『남산에 끌려가 「독도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말라」고 협박 받았다』:

        
- 독도수비대 故 홍순칠 대장의 미망인 박영희씨 -

- 본지 단독인터뷰서 밝혀 -

- 『정보부의 모진 고문으로 팔이 부러지는등 후유증, 말로 다 못해』 -



『80년대 전두환 정권 당시 일이예요』

『건장한 청년 3~4명이 집에 들이닥쳐 남편(홍순칠대장)을 데리고 갔는데,그곳이 「남산」 이었어요』

『그곳(남산)에서 모진 고문과 함께 「독도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말라」고 협박했어요』

1953년부터 1956까지 독도수비대장을 맡아 숱한 기록을 남긴 故 홍순칠 대장의 미망인 박영희씨(68)는 남편의 독도수호와 관련된 갖은 고초를 이같이 밝혔다.

박씨가 남편 홍대장이 끌려간  「남산」이라고 전한 곳은 전두환 정권 당시의 서슬퍼렇던 정부보를  말하는 것이다.

박여사는 <독도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그 당시 남산에 끌려가 심한고문을 당해 팔이 부러 지는등의 후유증으로 인해 85년 세상을 떠날때 까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면서『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수호하는데 정보부가 독도에 대해서 일체 말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여사는『독도문제를 놓고 무엇인가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다』면서『일본인들의 간교한 독도침탈기도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왜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독도수비대장을 지낸 남편으로 인해 평생을 긴장과 고초를 겪으면서 살아온 박씨는  「독도」라고 하면 지긋 지긋하다고 말하면서도 또한 독도없이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박여사에게는 독도가 생의 전부였을 정도로 애착과 함께 고초의 세월 이었다.

경북 안동에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안동대학 사범대를 나온 박씨는 열아홉살 되던 당시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우연히 홍대장을 만났다.

꽂다운 나이에 부모님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홍대장과 결혼한 박여사는  신혼초부터 독도수호대원들의 뒷바라지가 전부였다.

『시집을 갔는데 신혼의 단꿈은 사라지고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남편의 뒷바라지로 인해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도 한달에 한두번도 채 못되었 으니까요』

경북 울릉도에서 태어난 홍대장은 6.25 전쟁이 막 끝날 무렵부터 독도가 일본인들로 부터 수차례 침략을 받고 있을때 독도를 수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독도수비대를 결성한 것.

  일본의 독도침략에 의해 독도가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에서 순수 민간인으로서 독도수비대를 결성한 장본인이다.

당시 일본은 6.25전쟁이 끝날 무렵을 틈타 독도를 침략,영토를 빼앗으려는 기도를 해 올 때였다.

  홍대장은 카빈 소총과 박격포 M1소총등을 무장 한채 일본의 독도침략과 정면으로 맞써 싸운 의용수비대였다.

『거센 파도와 싸우면서도 큰 나무로  대포발사대를  만들어 천막으로 덮어 놓으면 일본인들이 쌍안경으로 독도를 살피다가 큰 대포가 보이니까 침략을 해오지 못했다는 겁니다』

신혼의 단꿈도 사라진 채 독도수비대 뒷바라지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남편으로 부터 긴장된 독도수호 활동을 직접듣고 나면 어느새 독도수비대의 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고 박여사는 전한다.

남편이 독도수비대장을 맡아 활동을 하면서 56년 7월 께 경찰에 인계를 할때 까지 3년6개월 동안의 짧고도 긴세월은 끝이 났다.

그러나 갖은 고생과 함께 고초의 세월은 그 이후 부터였다.  

『남편의 뒤를 수시로 감시하고 취직은 커녕,자유로운 활동조차 하지 못했어요』

『아이들을 기르기 조차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남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났어요』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울릉도 선착장 입구에서 국수장수까지 직접 나설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땅한평 남짓한 곳에 허름한 판자로 국수집을 만들었어요』

『당국에서 허가를 내주지도 않아 찾아가서 사정한 끝에 「묵시적 허가」를 받아 가까스로 국수집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독도를 지키려는 남편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가족에게 까지 이렇게 고통을 줄 수가 있는지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남편 홍대장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로부터 7~8년 흐른뒤인 93,4년께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홍대장의 장녀가 YS문민정부에 탄원서를 냈다.

아버지 홍대장에 대한 독도수호와 관련된 파란만장한 고난의 세월을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 것.

당시의 정부가 독도수호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와 함께 홍대장에게 훈장을 추서했다.

긴 세월이 지난뒤 남편 홍대장의 명예는 회복되었어도 독도수비대장의 아내로서의 기나긴 고초의 세월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현재 경기도 구리시에서 딸이 얻어준 작은 아파트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박씨는 남편이 생존해 있을때는 5급상이군인 이라는 혜택을 받았지만,세상을 떠난이후에는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이후 가족이라도 보훈대상자가 계속 될 수 있는 제도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박씨는 그러면서『독도는 분명한 우리의 영토인데,우리의 영토를 우리의 손으로 지켜햐 하는데도 일부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라고 말했다.<경기 구리시 현지/김두수.사진/노상화기자>



민족자존 지킴이 "독도신문". 시간: 2000/09/05 화 1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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